Tales from Topographic Oce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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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는 1973년 발매된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의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존 앤더슨과 스티브 하우가 힌두교 텍스트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으며, 앨런 화이트가 참여한 첫 앨범이다. 앨범은 발매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엇갈린 평가를 받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하여 영국과 미국 차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앨범은 4개의 20분 내외 트랙으로 구성되었으며, 로저 딘이 디자인한 게이트폴드 슬리브 아트워크가 특징이다. 앨범 발매 후 릭 웨이크먼이 탈퇴했으며, 2016년 재발매 버전에는 보너스 트랙이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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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es from Topographic Oceans - [음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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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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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스튜디오 앨범 |
아티스트 | 예스 |
발매일 | 1973년 12월 7일 |
녹음 시기 | 1973년 7월 – 9월 |
장르 | 프로그레시브 록 |
길이 | 80분 59초 82분 42초 (2003년 리마스터) |
레이블 | 애틀랜틱 |
프로듀서 | 예스 에디 오포드 |
이전 앨범 | Yessongs |
이전 앨범 발매일 | 1973년 |
다음 앨범 | Relayer |
다음 앨범 발매일 | 197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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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 성적 | |
영국 | 1위 |
미국 | 6위 |
일본 | 9위 |
2. 배경 및 구상
1973년 2월, 존 앤더슨, 스티브 하우, 크리스 스콰이어, 릭 웨이크먼, 앨런 화이트로 구성된 예스는 일본 공연을 진행했다. 이 시기, 앤더슨은 도쿄 호텔에서 힌두교 요가 지도자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자서전 "어느 요기의 자서전"[76]을 읽고 영감을 받아, 투어 중 하우와 함께 앨범의 기본적인 구상을 시작했다.
앨범 작곡은 앤더슨과 하우의 협력으로 시작되었으며, 앤더슨은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의 저서 《자아와 신성을 발견하는 요가 과학》에서 영감을 얻어 앨범의 개념적 토대를 구축했다. 그는 하우에게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1973년 여름 동안 런던 근처 하우의 집에서 함께 음악적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다. 다른 밴드 멤버들도 작곡에 참여했지만, 릭 웨이크먼은 초기 아이디어에는 열정적이었으나 점차 음악적 방향에 불만을 느끼게 되었다. 앨런 화이트와 크리스 스콰이어는 앤더슨과 하우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이전 앨범에 비해 그 역할은 줄어들었다. 앨범 전체 녹음은 1973년 8월에서 9월 사이 런던의 모건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2. 1. 컨셉의 기원
1973년, 예스는 보컬 존 앤더슨, 베이시스트 크리스 스콰이어,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우, 키보디스트 릭 웨이크먼, 그리고 드러머 앨런 화이트로 라인업을 확정했다.[1] 그들의 다섯 번째 앨범인 ''Close to the Edge''(1972)는 상업적 성공과 비평적 호평을 동시에 받았으며, 밴드는 1972년 7월부터 1973년 4월까지 전 세계 투어를 진행하며 앨범을 지원했다.
앤더슨은 이 시기에 다음 앨범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룹이 18분 길이의 "Close to the Edge"와 같은 성공적인 대곡을 작곡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규모 구성"을 앨범에 포함시키고자 했다. 1973년 3월, 일본 투어 중 도쿄의 한 호텔 방에서 앤더슨은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요가의 자서전''을 읽다가 샤스트라로 알려진 4개의 힌두교 텍스트에 대한 긴 설명을 발견했다. 요가난다는 샤스트라를 "종교적, 사회적 삶의 모든 측면과 법, 의학, 건축, 예술 분야를 포괄하는 포괄적인 논문"이자 "상세한 상징주의의 베일 아래 심오한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2][3] 앤더슨은 이 4개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4부작 서사시" 컨셉 앨범을 만들겠다는 아이디어에 몰두했지만, 나중에 그는 그것들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했다.[4] 킹 크림슨의 드러머이자 타악기 연주자인 제이미 뮤어는 그 달 초 브루포드의 결혼 피로연에서 앤더슨에게 요가난다의 책을 추천했다.[5] 앤더슨은 뮤어에 대해 "그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 우리는 구루 타입이 아닌, 정말 진지한 명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4] 또한 앤더슨은 신비주의자이자 화가이며, 그에게 깊은 영향을 준 영성 서적의 저자인 베라 스탠리 알더와의 대화를 통해 텍스트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얻었다.[14] 1973년 BBC 다큐멘터리 시리즈 ''인간의 부상'' 역시 앤더슨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제공"했으며, 진행자인 제이콥 브로노프스키가 설명하는 지구, 태양계, 인간의 "지식과 진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6]
1973년 3월과 4월, 예스는 호주와 미국 투어를 진행했고, 이 기간 동안 앤더슨은 그룹의 작곡가이자 편곡가인 하우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하우는 앤더슨의 컨셉을 발전시키는 데 관심을 보였다. 두 사람은 촛불을 켜놓고 호텔 방에서 작곡 세션을 열어 음악적, 서정적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하우는 "존은 나에게 '그것과 비슷한 거 있어?'라고 묻곤 했고, 내가 뭔가를 연주하면 그는 '멋지네. 다른 거 있어?'라고 말하며 다른 곡을 연주하곤 했다"고 회상했다.[7] 하우가 연주한 한 리프는 처음에는 버려졌지만, 나중에 3면에 포함되었다. 당시 두 사람은 트랙에 어울리는 다른 주제를 찾고 있었다.[7] 하우는 이 시기를 앤더슨과 자신이 "가능성의 외연을 탐구할 수 있는 황금 기회"로 여겼으며, 예측 가능한 코러스와 곡 구조를 피했다고 회상한다.[8] 조지아주 서배너에서 앤더슨과 하우는 오전 7시에 끝난 6시간의 세션 동안 앨범의 보컬, 가사, 악기 구성을 완료했으며, 이는 각 4개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하나의 트랙 형태로 나타났다. 앤더슨은 그날 밤을 "우리 둘을 며칠 동안이나 고양시켰던 마법 같은 밤"이라고 묘사했다.[9] 앤더슨과 하우는 앨범의 컨셉을 나머지 밴드에게 제시했지만, 멤버들은 다소 불확실한 반응을 보였다. 하우는 "하지만 존과 나는 그 아이디어를 팔 수 있었고, 때로는 멤버들을 정말 격려해야 했다"고 회상했다.[7]
당시 애틀랜틱 레코드 런던 지부의 부사장이었던 필 칼슨은 앤더슨이 네수히 에르테군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앨범 제목을 원래 ''Tales from Tobergraphic Oceans''로 지으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앤더슨은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의 우주 이론 중 하나를 묘사하기 위해 "tobergraphic"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에르테군은 앤더슨에게 "tobergraphic"이 "topographic"과 유사하며 그 의미를 설명했고, 앤더슨은 그에 따라 제목을 변경했다.[10] 에디 오포드와의 인터뷰와 1973년 8월과 9월에 각각 발행된 예스가 독자 투표에서 우승한 것을 축하하는 ''Melody Maker'' 광고는 곧 출시될 앨범을 ''Tales from the Tobergraphic Ocean''과 ''Tales from Tobergraphic Oceans''로 홍보했다.[11][12][13][1] 릭 웨이크먼은 앨범에 농담으로 ''Tales from Toby's Graphic Go-Kart''라는 별명을 붙였다.[15]
1973년 2월, 예스는 존 앤더슨, 스티브 하우, 크리스 스콰이어, 릭 웨이크먼, 앨런 화이트의 멤버로 일본 공연을 가졌다. 당시 앤더슨은 도쿄 호텔에서 힌두교 요가 지도자인 파라마한사 요가난다의 자서전 "어느 요기의 자서전"을 읽고 이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어, 투어 중 하우와 함께 구상을 구체화했다.[7]
2. 2. 작곡 과정
예스의 여섯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의 작곡은 보컬리스트 존 앤더슨과 기타리스트 스티브 하우의 협력으로 시작되었다. 앤더슨은 마하리쉬 마헤쉬 요기가 쓴 《자아와 신성을 발견하는 요가 과학》이라는 책에 영감을 받아 앨범의 개념적 토대를 만들었다. 그는 하우에게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두 사람은 1973년 여름 동안 런던 근처의 하우의 집에서 음악적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다른 밴드 멤버들도 작곡 과정에 참여했다. 키보디스트 릭 웨이크먼은 앨범의 초기 아이디어에 열정적이었지만, 음악적 방향에 점점 더 불만을 느끼게 되었다. 드러머 앨런 화이트와 베이시스트 크리스 스콰이어는 앤더슨과 하우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그들의 역할은 이전 앨범에 비해 줄어들었다. 전체 앨범은 1973년 8월에서 9월 사이에 런던의 모건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
3. 제작 과정
예스는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편곡, 리허설, 녹음하는데 5개월을 보냈다.[87] 녹음 장소를 두고 멤버들 간에 의견이 엇갈렸다. 앤더슨과 웨이크먼은 시골에서 녹음하기를 원했지만, 스콰이어와 하우는 런던에 머물기를 희망했고, 결국 앨런 화이트의 결정적인 표결로 런던에 남게 되었다.[15] 앤더슨은 숲 속 텐트 아래에서 전기 발전기를 땅에 묻어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밤에 녹음하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지만, 다른 멤버들의 반대에 부딪혔다.[16]
밴드는 1970년부터 함께 작업해 온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인 에디 오포드와 함께 작업했다. 오포드는 매니저 브라이언 레인에게 밴드 내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시골에서 녹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5] 하지만 예스는 설득 끝에 런던에 머물기로 결정했고, 피츠로비아의 애드비전 스튜디오 대신 윌스덴의 모건 스튜디오(Morgan Studios)에서 녹음하기로 했다. 모건 스튜디오에는 영국 최초의 24트랙 테이프 머신인 3M M79가 있었기 때문이다.[50] 하지만 이 기계는 잦은 고장을 일으켰다.[17] 스콰이어는 스튜디오에서 일주일에 7일, 하루 16시간씩 작업에 매달렸다.
1973년 7월, 예스는 모건 스튜디오 3에 10주 동안 머물렀다.[50] 레인과 앤더슨은 스튜디오를 농장처럼 꾸미기 시작했다. 스콰이어는 레인이 앤더슨의 텐트 아이디어를 놀리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앤더슨은 꽃, 화분, 잘라낸 소와 양을 가져왔고, 웨이크먼의 키보드 주변에 흰색 울타리가 쳐졌으며, 앰프는 건초 더미 위에 놓였다.[16]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가 그들의 앨범 ''사바스 블러디 사바스(Sabbath Bloody Sabbath)''를 녹음하기 위해 스튜디오 4로 옮겨왔을 때, 가수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은 전자 젖꼭지가 달린 모형 소와 구석에 작은 헛간이 있는 것을 보고 "아이의 장난감 같다"고 말했다. 오포드는 소가 낙서로 뒤덮였고 식물들이 녹음 도중에 죽어갔다고 회상하며 "그것이 그 앨범 전체를 요약한다"고 말했다.
녹음 중 앤더슨은 화장실에서 노래할 때 들었던 소리를 재현하고 싶어 조명 엔지니어 마이클 테이트에게 자신이 노래할 수 있는 3면의 타일 부스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테이트가 그 아이디어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합판을 사용하여 부스를 만들고 그 안에 타일을 붙였다.[18] 사운드 엔지니어 나이젤 루비는 녹음 중에 타일이 상자에서 떨어지는 것을 기억한다.[19] 웨이크먼은 녹음이 진행되면서 밴드와 거리를 두었고, 스튜디오 바에서 술을 마시고 다트를 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49] 오스본은 그와 친구가 되었고 웨이크먼이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다고 회상하며 "Sabbra Cadabra"에서 신시사이저를 연주하도록 초대했다. 웨이크먼은 기여에 대한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고, 밴드는 그에게 맥주로 대가를 지불했다. 1973년 8월, 앤더슨은 기자 크리스 웰치(Chris Welch)와 인터뷰에서 밴드를 그만둔다는 소문을 일축하고, 익명의 멤버로부터의 의견 차이가 해결되었다고 밝혔다.
예스는 4곡 각각의 백킹 트랙을 녹음하는 데 1주일을 보낸 후, 오버더빙 작업을 진행했다.[22] 하우는 두 작업 모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편곡이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을 제기할 때 앤더슨과 번갈아 가며 다른 멤버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22] 앤더슨은 완성된 테이프와 관련된 아찔한 순간을 회상했다. 마지막 믹스를 완성하기 위해 오포드와 밤샘 작업을 한 후, 새벽에 모건을 떠났는데, 오포드가 열쇠를 찾기 위해 테이프를 차 지붕에 올려놓았다가 잊은 채 차를 몰고 간 것이다. 그들은 차를 세우고 테이프가 도로에 떨어진 것을 발견했고, 앤더슨은 달려오는 버스에서 테이프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다행히 테이프는 손상되지 않았다.[2] 예스는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편곡, 리허설, 녹음하는 데 총 5개월을 보냈고, 모건 스튜디오에서 사용한 비용은 9만 파운드에 달했다.[20][12]
3. 1. 리허설
투어를 마친 후, 예스는 1973년 5월 런던 풀럼에 있는 에머슨, 레이크 & 파머(Emerson, Lake & Palmer)가 사들인 옛 영화관인 만티코어 스튜디오(Manticore Studios)에서 다시 모였다. 그들은 8주 동안 앤더슨과 하우의 초기 아이디어를 연습하고 발전시켰다.[50] 이 결과 와이즈먼이 묘사했듯이 4개의 트랙이 나왔다. "하나는 약 8분 정도였고, 하나는 15분, 하나는 19분, 하나는 12분이었는데, 밴드는 그것들을 싱글 앨범에 맞게 다듬을지, 아니면 더블 앨범(Double album)을 만들 정도로 늘릴지 결정해야 했다." 하우는 더블 앨범을 만들자는 상호 합의를 기억했다.[2] 와이즈먼은 그룹이 충분히 강력한 자료를 내놓을 수 있다면 이를 지지했다.[8] 앤더슨은 1973년 5월에 발매된 첫 번째 라이브 앨범인 ''예송스(Yessongs)''가 거의 130분 분량의 음악을 담은 트리플 앨범(Triple album)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더블 앨범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9] 와이즈먼은 발매 당시 ''토포그래픽 오션스 이야기(Tales from Topographic Oceans)''의 초기 음악적 콘셉트를 묘사했는데, 관객의 반응에 따라 파트를 언제든지 바꿔서 밴드가 경쾌한 부분을 연달아 연주하고 느린 부분은 나중에 건너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개념을 음반에 담는 것이었다.[10]그룹은 더블 앨범을 만들기로 동의했지만, 개발할 아이디어가 없었기 때문에 즉흥 연주를 통해 4개의 트랙을 살을 붙였다. 와이즈먼은 "거의 거리의 악사 같은, 자유 형식의 사고방식"과 그 결과로 나온 음악적 "채움"에 동의하지 않았는데, 그는 더 많은 리허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 부분이 "아방가르드 재즈 록(jazz rock)과 비슷했고, 나는 아무것도 제공할 것이 없었다"고 느꼈다.[8] 스콰이어는 4개의 트랙에 "많은 내용"이 있다는 것을 인식했지만, 때로는 힘이 부족하여 다양하고 산만한 앨범이 되었다.[11]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앤더슨은 라이너 노트에서 스콰이어, 와이즈먼, 화이트가 음악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12] 앤더슨은 이 시기를 되돌아보며 밴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와이즈먼과 프로듀서 에디 오퍼드(Eddy Offord)의 불화는 ''프래자일 (예스 앨범)''(Fragile) 이후 그룹 내에 존재했던 "환상적인 조화"의 종말을 알렸다.[13] 예스는 리허설을 시작한 지 약 한 달 만에 휴식을 취했고, 그 동안 앤더슨은 가족과 함께 마라케시(Marrakesh)로 가서 가사를 썼다.[14]
3. 2. 녹음
예스는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편곡, 리허설, 녹음하는데 5개월을 보냈다.[87] 그룹은 녹음 장소를 결정하는 데 의견이 갈렸다. 존 앤더슨과 릭 웨이크먼은 시골에서 후퇴하기를 원했지만, 크리스 스콰이어와 스티브 하우는 런던에 머물고 싶어 했고, 무관심했던 앨런 화이트가 결정적인 표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15] 앤더슨은 전기 발전기를 땅에 묻어 소리가 나지 않도록 숲속 텐트 아래에서 밤에 녹음하기를 원했지만, "그렇게 제안했을 때 모두들 '존, 정신 좀 차려!'라고 말했습니다."[16] 예스는 1970년부터 밴드와 함께 작업했고 투어에서 사운드를 믹싱했던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인 에디 오포드가 합류했다. 그는 매니저인 브라이언 레인(Brian Lane)에게 "몇 송이의 꽃과 나무"가 앨범이 그룹 내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긴장을 완화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시골에서 녹음하도록 밀어붙였다. 예스는 런던에 머물도록 설득되었지만, 피츠로비아(Fitzrovia)의 친숙한 애드비전 스튜디오(Advision Studios)는 피하고 싶어 윌스덴(Willesden)의 모건 스튜디오(Morgan Studios)에서 녹음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에는 영국 최초의 24트랙 테이프 머신인 3M M79가 있었기 때문에 스튜디오에서 더 많은 가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50] 이러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기기는 자주 고장을 일으켜 수리를 위한 다운타임이 필요했다.[17] 스콰이어는 일주일에 7일, 하루 16시간씩 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1973년 7월, 예스는 10주 동안 모건 스튜디오 3에 자리를 잡았다.[50] 레인과 앤더슨은 농장과 비슷하게 스튜디오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스콰이어는 레인이 앤더슨의 텐트 아이디어가 거부되자 그를 놀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앤더슨은 꽃, 화분, 잘라낸 소와 양을 가져왔고, 웨이크먼의 키보드 주변에 흰색 울타리가 쳐졌으며 증폭기는 건초 더미 위에 놓였다.[16]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가 앨범 ''사바스 블러디 사바스(Sabbath Bloody Sabbath)''를 녹음하기 위해 스튜디오 4로 옮겨갔을 때, 가수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이 방문하여 전자 젖꼭지가 달린 모형 소와 구석에 작은 헛간이 있는 것을 기억하며 "아이의 장난감 같다"라고 말했다. 오포드는 소가 낙서로 뒤덮였고 식물들이 녹음 도중에 죽어갔다고 기억하며 "그것이 그 앨범 전체를 요약한다"라고 말했다. 녹음 중에 앤더슨은 화장실에서 노래할 때 들었던 소리를 재현하고 싶어 조명 엔지니어 마이클 테이트(Michael Tait)에게 그가 노래할 수 있도록 3면의 타일 부스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테이트가 그 아이디어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합판을 사용하여 하나를 만들고 그 안에 타일을 붙였다.[18] 사운드 엔지니어 나이젤 루비(Nigel Luby)는 촬영 중에 타일이 상자에서 떨어지는 것을 기억했다.[19] 웨이크먼은 녹음이 진행되면서 밴드와 거리를 두었고, 스튜디오 바에서 술을 마시고 다트를 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49] 오스본은 그와 친구가 되었고 웨이크먼이 "지루해 죽을 지경"이었다고 기억하며 "Sabbra Cadabra"에서 신시사이저를 연주하도록 초대했다. 웨이크먼은 기여에 대한 돈을 받지 않으려고 했고, 밴드는 그에게 맥주로 대가를 지불했다. 1973년 8월, 앤더슨은 기자 크리스 웰치(Chris Welch)와 이야기하면서 누군가가 밴드를 그만둔다는 소문을 일축했고, 익명의 멤버로부터의 의견 차이가 해결되었다고 말했다.
예스는 4곡 각각의 백킹 트랙을 녹음하는 데 1주일을 보낸 후, 오버더빙 작업을 했다. 하우는 두 작업 모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으며, 편곡이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을 제기할 때 앤더슨과 번갈아 가며 이끌고 다른 멤버들을 설득했다고 말했다.[22] 앤더슨은 완성된 테이프와 관련된 거의 재앙에 가까운 상황을 회상했다. 마지막 믹스를 완성하기 위해 오포드와 함께 밤샘 작업을 한 후, 두 사람은 새벽에 모건을 떠났고, 오포드는 열쇠를 찾기 위해 테이프를 차 지붕에 올려두었다. 그는 테이프를 잊은 채 차를 몰고 갔다. 그들은 차를 세우고 테이프가 도로에 떨어진 것을 발견했고, 앤더슨은 달려오는 버스에서 테이프를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테이프는 이 사고로 손상되지 않았다.[2] 예스는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편곡, 리허설, 녹음하는 데 5개월을 보냈고, 모건에서 보낸 시간은 스튜디오 비용으로 9만 파운드에 달했다.[20][12]
3. 2. 1. The Revealing Science of God (Dance of the Dawn)
}}이 앨범은 존 앤더슨이 설명한 18분에서 21분 사이의 4개의 트랙 또는 "악장"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밴드 멤버는 음악 작곡에 참여했다. 앤더슨은 앨범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그리고 각 트랙에서 음악적 의미로 어떻게 그 개념이 표현되었는지에 대한 짧은 설명을 앨범의 라이너 노트에 제공했다.[12] 오리지널 LP는 앤더슨과 하우를 가사의 공동 작가로 기재했지만, 2003년 재발행본은 "The Ancient"의 추가 공동 작가로 스콰이어를, "The Remembering"의 추가 공동 작가로 스콰이어, 웨이크먼, 화이트를 기재했다.[12][55]
"The Revealing Science of God (Dance of the Dawn)"은 요가난다가 "직접 들었다" 또는 "계시된" 경전, 특히 베다로 묘사한 슈루티를 기반으로 한다. 그 제목과 관련하여 앤더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항상 조심스럽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The Revealing'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약간 힙해졌습니다." 이 트랙은 원래 28분 길이였지만, 음반 시간 제약으로 인해 6분이 잘려나갔다. 앤더슨은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으면서 점차적으로 고조되는 목소리로 트랙을 시작하도록 영감을 받았고, 베트남 전쟁을 가사의 소재로 사용했다.[16] 하우는 깁슨 ES-345를 연주했고,[21] 그의 솔로는 프랭크 자파가 "관객이 원했기 때문에" 긴 솔로를 연주한다고 믿었던 것에 영향을 받았다. "저는 어느 단계에서 '제가 그렇게 할 겁니다. 그들이 좋아할 거예요'라고 생각했습니다." "Young Christians see it" 섹션은 ''Fragile'' 세션에서 사용하지 않은 테이크에서 시작되었으며, 2015년 보너스 트랙 "All Fighters Past"로 발매되었다.[2] 화이트는 그룹이 이 트랙을 믹싱하는 데 약 6일을 보냈다고 회상했다.[2] 2003년 CD 재발행본에는 이전에 발매되지 않은 2분짜리 소개가 포함되어 있다.
"The Remembering (High the Memory)"는 문자 그대로 "기억된 것"을 의미하는 텍스트인 스므리티와 관련이 있다. 요가난다는 스므리티가 "세계에서 가장 긴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로 "아득한 과거에 기록되었다"고 썼다. 앤더슨은 그것을 "음악의 잔잔한 바다"라고 묘사했고, 밴드가 사운드의 "리듬, 소용돌이, 파도, 해류"와 함께 바다처럼 연주하기를 원했다. 이 트랙에는 앤더슨이 "우리 마음의 눈의 흐름과 깊이를 생생하게 만들어준다"고 썼고, 웨이크먼의 최고 작품 중 하나로 평가한 키보드 솔로가 포함되어 있다.[12][16] 스콰이어는 프렛이 없는 길드 베이스를 연주했고, 그의 연주를 그가 했던 "가장 멋진 것 중 하나"라고 묘사했으며, 더 인기 있는 곡에서의 그의 연주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 그는 이 트랙이 편곡에서 특히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화이트는 기타로 한 섹션의 코드 기반을 생각해 냈는데, 그는 자신 있게 연주하지는 못했지만 앤더슨은 그의 멜로디를 알아보고 그의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라고 말했다. 하우는 데네렉트로 일렉트릭 시타, 루트,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한다.[22]
"The Ancient (Giants Under the Sun)"은 "고대 시대"를 의미하는 푸라나에 기인하며, 여기에는 18개의 "고대" 알레고리가 포함되어 있다. 앤더슨은 "스티브의 기타는 잃어버린 문명의 아름다움과 보물에 대한 성찰을 날카롭게 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라고 썼다.[12] 가사에는 다양한 언어에서 "태양"이라는 단어의 여러 번역 또는 태양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16] 하우는 이 곡의 오프닝 섹션이 오늘날까지 그를 놀라게 한다고 느꼈고, 밴드가 어떻게 "그렇게 멀리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그는 스틸 기타와 스페인산 라미레즈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했고,[22][2] 이를 "매우 스트라빈스키, 매우 포크적"이라고 묘사했다. 하우는 기타에서 원하는 사운드를 얻기 위해 오퍼드에게 고전 기타리스트 줄리안 브림의 여러 녹음을 가이드로 들려주었다.[2] 이 트랙은 나중에 "Leaves of Green"으로 알려지게 된 어쿠스틱 기반의 곡으로 끝을 맺는다. 화이트는 속이 빈 통나무와 알루미늄 시트의 브러시를 퍼커션으로 사용했다.[55]
"Ritual (Nous sommes du soleil)"은 문자 그대로 의식 또는 의례를 의미하는 탄트라와 관련이 있다. 앤더슨은 이 곡의 베이스와 드럼 솔로를 "악의 근원과 순수한 사랑" 사이에서 삶이 제시하는 싸움과 투쟁을 표현한 것이라고 묘사했다.[12] 하우는 특히 초반부의 기타 솔로를 좋아하는데, 그에게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천상의 연주"였고, 깁슨 레스 폴 주니어를 사용했다.[22] 그는 "Life is like a fight" 섹션의 코드와 일부 가사를 썼다.[22] 그의 아웃트로 기타 솔로는 처음에는 더 즉흥적이고 재즈 지향적이었지만, 나머지 그룹은 그 편곡에 만족하지 못했다. 앤더슨은 하우가 앨범에서 여러 테마를 골라 결합하라고 제안했고, 하우는 "더 간결하고, 더 주제적인 접근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23] 웨이크먼이 스튜디오에 없는 동안 화이트는 마지막 "Nous sommes du soleil" 섹션의 피아노 시퀀스를 생각해 냈다.[2] 후반부에는 드럼으로 연주되는 주요 멜로디가 특징인 퍼커션 잼이 포함되어 있다. 표준 키트를 연주한 화이트는 앤더슨이 칵테일 키트를, 스콰이어가 팀파니를 연주하면서 다른 멤버들에게 시퀀스를 가르쳤다.[24] 하우는 초기에 무대에서 드럼 솔로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기타 연주에 영향을 미쳐 참여하지 않았다.
3. 2. 2. The Remembering (High the Memory)
"The Remembering (High the Memory)"는 문자 그대로 "기억된 것"을 의미하는 텍스트인 스므리티와 관련이 있다. 요가난다는 스므리티가 "세계에서 가장 긴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로 "아득한 과거에 기록되었다"고 썼다.[55]앤더슨은 이 곡을 "음악의 잔잔한 바다"라고 묘사하며, 밴드가 사운드의 "리듬, 소용돌이, 파도, 해류"와 함께 바다처럼 연주하기를 바랐다.[16] 이 트랙에는 앤더슨이 "우리 마음의 눈의 흐름과 깊이를 생생하게 만들어준다"고 썼고, 웨이크먼의 최고 작품 중 하나로 평가한 키보드 솔로가 포함되어 있다.[12][16]
스콰이어는 프렛이 없는 길드 베이스를 연주했고, 그의 연주를 그가 했던 "가장 멋진 것 중 하나"라고 묘사했으며, 더 인기 있는 곡에서의 그의 연주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 그는 이 트랙이 편곡에서 특히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16] 화이트는 기타로 한 섹션의 코드 기반을 생각해 냈는데, 그는 자신 있게 연주하지는 못했지만 앤더슨은 그의 멜로디를 알아보고 그의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라고 말했다.[16] 하우는 데네렉트로 일렉트릭 시타, 루트,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한다.[22]
3. 2. 3. The Ancient (Giants Under the Sun)
"The Ancient (Giants Under the Sun)"은 "고대 시대"를 의미하는 푸라나에 기인하며, 여기에는 18개의 "고대" 알레고리가 포함되어 있다.[12] 앤더슨은 "스티브의 기타는 잃어버린 문명의 아름다움과 보물에 대한 성찰을 날카롭게 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썼다.[12] 가사에는 다양한 언어에서 "태양"이라는 단어의 여러 번역 또는 태양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16]하우는 이 곡의 오프닝 섹션이 오늘날까지 그를 놀라게 한다고 느꼈고, 밴드가 어떻게 "그렇게 멀리 나아갈 수 있었는지"를 생각했다.[55] 그는 스틸 기타와 스페인산 라미레즈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했고,[22][2] 이를 "매우 스트라빈스키, 매우 포크적"이라고 묘사했다. 하우는 기타에서 원하는 사운드를 얻기 위해 오퍼드에게 고전 기타리스트 줄리안 브림의 여러 녹음을 가이드로 들려주었다.[2] 이 트랙은 나중에 "Leaves of Green"으로 알려지게 된 어쿠스틱 기반의 곡으로 끝을 맺는다. 화이트는 속이 빈 통나무와 알루미늄 시트의 브러시를 퍼커션으로 사용했다.[55]
3. 2. 4. Ritual (Nous Sommes du Soleil)
"Ritual (Nous sommes du soleil)"은 의식 또는 의례를 의미하는 탄트라와 관련이 있다.[12] 앤더슨은 이 곡의 베이스와 드럼 솔로가 "악의 근원과 순수한 사랑" 사이에서 삶이 제시하는 싸움과 투쟁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12] 하우는 특히 초반부의 기타 솔로를 좋아했는데, 그에게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천상의 연주"였으며 깁슨 레스 폴 주니어를 사용했다.[22] 그는 "Life is like a fight" 섹션의 코드와 일부 가사를 썼다.[22]하우의 아웃트로 기타 솔로는 처음에는 더 즉흥적이고 재즈 지향적이었지만, 나머지 그룹은 그 편곡에 만족하지 못했다. 앤더슨은 하우가 앨범에서 여러 테마를 골라 결합하라고 제안했고, 하우는 "더 간결하고, 더 주제적인 접근 방식"으로 그렇게 했다.[23]
웨이크먼이 스튜디오에 없는 동안 화이트는 마지막 "Nous sommes du soleil" 섹션의 피아노 시퀀스를 생각해 냈다.[2] 후반부에는 드럼으로 연주되는 주요 멜로디가 특징인 퍼커션 잼이 포함되어 있다. 표준 키트를 연주한 화이트는 앤더슨이 칵테일 키트를, 스콰이어가 팀파니를 연주하면서 다른 멤버들에게 시퀀스를 가르쳤다.[24] 하우는 초기에 무대에서 드럼 솔로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기타 연주에 영향을 미쳐 참여하지 않았다.
4. 발매 및 반응
1973년 11월 8일, 데이비드 젠슨이 라디오 룩셈부르크에서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방송할 예정이었으나, 앤더슨에 따르면 방송국 측 실수로 빈 테이프를 받아 앨범 소개 후 정적이 흘렀다고 한다.[91] 이후 11월 9일 니키 혼의 《Your Mother Wouldn't Like It》, 11월 10일 피트 드러먼드의 《Rock on Radio One》에서 추가 라디오 방송이 진행되었다.[92]
앨범은 1973년 12월 7일 영국에서, 1974년 1월 9일 북미에서 발매되었다.[93] 발매 전부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는데, 영국 축음기 협회가 골드 디스크 기준을 변경한 후, 7만 5천 장의 선주문만으로 영국 최초로 골드 인증을 받았다.[94] 영국 음반 차트 1위를 2주간 유지했고, 미국 빌보드 200 차트에서는 6위까지 올랐다.[95] 1974년 3월 1일 영국, 1974년 2월 8일 미국에서 각각 골드 인증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50만 장 이상 판매되었다.[95]
앨범 발매 당시, 영국 평론가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더 타임스의 로버트 쉘던은 "록오포닉"이라 칭하며 "The Ancient"를 "25년 후 현대 음악의 전환점으로 연구될 곡"이라고 평가했다.[35] 반면, 사운즈의 스티브 피콕은 "깊은 곳에서 온 싱거운 이야기"라며 혹평했다.[41] 멜로디 메이커의 크리스 웰치는 "스튜디오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조심스럽게 조립된 단편 걸작"이라고 평했지만, 따뜻함이나 개인적인 표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42]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의 스티브 클라크는 "큰 실망"이라며, 릭 웨이크먼의 키보드 연주가 제한적이고, 스티브 하우의 기타 연주가 웨이크먼의 키보드와 비슷한 톤을 내는 점을 비판했다.[43]
미국 내에서도 평가는 엇갈렸다. 레코드 월드는 "지금까지 가장 진보적인 앨범"이라고 극찬했지만,[44] 롤링 스톤의 고든 플레처는 "사이키델릭 낙서"라고 폄하하며 "과도한 정교함"으로 실패했다고 평가했다.[39] 캐시 박스는 "눈부신 컷"이라며 "경이로운" 음반이라고 극찬했다.[46] 타임은 1974년 9월, 이 앨범을 "지난해 가장 도발적인 앨범"이라고 평가했다.[47]
시간이 흐른 후 앨범에 대한 재평가와 밴드 멤버들의 회고는 다음과 같다. 올뮤직의 브루스 에더는 "그룹에서 나온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음악 구절 중 일부가 담겨 있다"고 평가했지만, "감탄에서 즐거움으로 가는 큰 도약이 있다"고 덧붙였다.[36] NME는 1992년 40주년 기념호에서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그 순간을 포착한 40개의 음반"으로 선정했다.[48] 마틴 포포프는 이 앨범을 "예스 경험의 블랙홀"이라고 칭하며 밴드의 확장과 폭발을 묘사했지만, 동시에 "상당히 접근하기 쉬운 음악"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크리스 스콰이어는 1974년 1월, 《예스 앨범》과 《토포그래픽 오션스 이야기》를 예스의 앨범 중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꼽았다.[50] 존 앤더슨은 1984년, 앨범이 "어려웠다"고 회상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냈지만,[51] 1990년에는 앨범의 4분의 3에 만족하지만 나머지는 "제대로 융합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릭 웨이크먼은 2006년, "《토포그래픽 오션스》에는 몇 가지 훌륭한 음악적 순간이 있지만, 곡을 늘린 부분이 끔찍하다"고 혹평했지만, "Nous sommes du soleil"과 같은 솔로는 칭찬했다.[52] 반면, 스티브 하우는 2023년에 이 앨범이 밴드에게 "날개를 펼치는 시간"이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53]
4. 1. 발매
1973년 11월 첫째 주, 앨범은 완성되어 영국 라디오에서 여러 차례 방송되었다.[29] 데이비드 젠슨의 라디오 룩셈부르크 쇼에서 11월 8일 방송 예정이었으나, 앤더슨에 따르면 라디오 방송국이 실수로 빈 테이프를 받아 앨범 소개 후 정적이 흘렀다고 한다.[30][91] 이후 11월 9일 니키 혼이 진행하는 캐피털 라디오의 《Your Mother Wouldn't Like It》와 다음 날 피트 드러먼드와 함께 BBC 라디오 1에서 《Rock on Radio One》에서 두 번 더 라디오 방송이 진행되었다.[30]앨범은 1973년 12월 7일 영국에서 발매되었고,[31] 1974년 1월 9일 북미에서 발매되었다.[1][32][93] 1973년 4월 영국 음반 산업 협회가 골드 디스크 자격에 대한 산업 규정을 변경한 후, 앨범은 75,000건의 선주문만으로 골드 인증을 받은 최초의 영국 음반이 되었다.[31] 앨범은 영국 음반 차트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미국 ''빌보드'' 톱 LP 차트에서 6위에 올랐다.[33][94] 1974년 3월 1일 영국에서,[31] 1974년 2월 8일 미국에서 골드 인증을 받았으며, 후자는 50만 장 판매를 돌파한 것에 대한 인증이었다.[34][95]
영국에서는 1973년 10월 26일에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제작 중 멤버 간의 불화로 인해 발매가 늦춰졌다. 공식적인 지연 공지는 없었지만, 잡지 리뷰 게재 시기로 보아 11월 중순에는 매장에 출시된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음반 차트에는 1973년 12월 22일자로 처음 등장했다.[74]
미국에서의 발매는 1974년 1월 9일로 알려져 있다. 일본반의 라이너 노트는 곤노 유지가 담당했다.
4. 2. 초기 반응
앨범은 발매 당시 영국 평론가들로부터 엇갈린 반응을 얻었다. 더 타임스의 로버트 쉘던은 이 음악을 "록오포닉"이라고 칭하며, "The Ancient"를 "25년 후 현대 음악의 전환점으로 연구될" 곡으로 선정했다.[35] 가디언은 앤더슨의 "높고 조심스럽게 조절된 목소리... 편안하고 통제된 것처럼 보였다"고 평가했다.[35] 사운즈의 스티브 피콕은 앨범과 라이브 공연을 리뷰하며 "깊은 곳에서 온 싱거운 이야기"와 "지루함에 가까움"이라고 혹평했다.[41]크리스 웰치는 멜로디 메이커에 앨범 리뷰를 기고하며 "스튜디오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조심스럽게 조립된 단편 걸작"이라고 평했다. 그는 부분적으로는 훌륭하지만, 다양한 요소를 전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따뜻함이나 개인적인 표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웰치는 "Ritual"이 앨범 전체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을 선사하며, 특히 앨런 화이트의 역동적인 드럼 연주와 단순한 가사가 인상적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 못하고 밋밋한 자기 만족에 빠진다고 비판했다.[42]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의 스티브 클라크는 두 달 동안 앨범을 듣고 라이브 공연을 관람한 후 "큰 실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Close to the Edge''의 강점이었던 "색깔과 흥분"이 사라졌다고 지적하며, 릭 웨이크먼의 키보드 연주가 제한적이고 음악에 "긍정적인 구성"이 부족하여 "합성 사운드의 씻김"에 묻히는 경향이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스티브 하우의 기타 연주가 웨이크먼의 키보드와 비슷한 톤을 내는 점을 지루하다고 평가했다. 반면, 존 앤더슨의 목소리는 "가냘프고 순수하며 때로는 매우 아름다운" 톤으로 음악을 이끌어가는 데 기여했다고 칭찬했다. 클라크는 예스가 음악성을 더 잘 보여주는 "진짜 노래"로 돌아오기를 희망하며 리뷰를 마무리했다.[43]
미국에서도 엇갈린 평가가 나왔다. 아브람스는 더 나은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녹음 실험"이라는 태그라인을 제안했다.[44] 레코드 월드는 이 앨범을 "지금까지 가장 진보적인 앨범"으로 평가하며 각 멤버의 재능, 특히 웨이크먼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44] 빌보드는 앤더슨의 "심오한 영적 개념"이 "소화하기 어려운 가사"로 표현되었지만, 밴드의 풍부하고 광범위한 연주, 특히 웨이크먼의 키보드 연주가 이를 보완한다고 평가했다. 빌보드는 "Ritual (Nous sommes du soleil)"을 가장 "완전한" 트랙으로 꼽았다.[45]
롤링 스톤의 고든 플레처는 이 앨범을 "사이키델릭 낙서"라고 폄하하며, ''Fragile''과 ''Close to the Edge''의 성공적인 곡들에 비해 "과도한 정교함"으로 인해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앨범의 길이, "The Ancient"의 하우의 기타 솔로, "Ritual"의 타악기 섹션에 대해 불만을 표했다. 그러나 웨이크먼의 "뛰어난 연주"를 칭찬하며 그가 "그룹에서 가장 인간적인" 멤버라고 평가하고, "The Ancient"의 어쿠스틱 기타 부분을 앨범의 최고점으로 꼽았다.[39] 캐시 박스는 이 앨범을 "눈부신 컷"으로 칭찬하며 "경이로운" 음반이라고 극찬했다. 캐시 박스는 예스가 "자신들의 예술 형식의 밝은 미래뿐만 아니라 풍부하고 전통적인 과거에도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언급하며 웨이크먼의 "영감을 주는" 연주가 앨범 전체에서 "반짝인다"고 평했다. 캐시 박스는 이 앨범을 "의심할 여지 없이 올해 최고의 앨범 중 하나"라고 결론지었다.[46] 타임은 1974년 9월, 이 앨범을 "지난해 가장 도발적인 앨범"이라고 평가했다.[47]
4. 3. 후대 평가
다음은 시간이 흐른 후 앨범에 대한 재평가와 밴드 멤버들의 회고를 담은 내용이다.음반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 올 어바웃 재즈: 5/5[35]
- 올뮤직: 3.5/5[36]
- 피치포크: 2.2/10[37]
- 크리스가우의 음반 가이드: C[38]
- 롤링 스톤: 비우호적[39]
- 롤링 스톤 음반 가이드: 4/5[40]
올뮤직의 브루스 에더는 "그룹에서 나온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음악 구절 중 일부가 담겨 있으며, 감탄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그 음악의 상당 부분을 심도 있게 발전시키지만, 감탄에서 즐거움으로 가는 큰 도약이 있다. 만약 그것을 붙잡을 수 있다면, 《Tales》는 기묘하고 훌륭하며 매혹적인 음악적 질감으로 가득 찬 풍경을 가로지르는 길고 때로는 영광스러운 음악 여행이다"라고 평가했다.[36]
NME는 1992년 40주년 기념호에서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그 순간을 포착한 40개의 음반"으로 선정했다.[48]
1996년, 잡지 《Progression》의 존 코바치는 1970년대 초반 예스의 진정한 특징이자 그들의 "진정한 도착점"을 나타내는 것은 《Close to the Edge》가 아닌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라고 주장했다. 그는 연주, 노래, 가사의 혁신성과 복잡성, 신비로움과 시적임을 칭찬하면서도, "《Tales》의 가장 헌신적인 청취자조차도 앨범이 여러 면에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트랙의 방황하는 경향과 집중력 부족을 지적했다. 또한, 스티브 하우의 기타 연주는 칭찬했지만, 릭 웨이크먼의 키보드 파트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사이드맨 역할로 격하"되었다고 비판했다.[49]
마틴 포포프는 이 앨범을 "예스 경험의 블랙홀"이라고 칭하며 밴드의 확장과 폭발, 내파를 묘사했지만, 동시에 "상당히 접근하기 쉬운 음악"을 담고 있다고 평가했다.
1974년 1월, 크리스 스콰이어는 《예스 앨범》과 《토포그래픽 오션스 이야기》를 예스의 앨범 중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꼽았다.[50]
1984년, 존 앤더슨은 《90125》 발매 후 《토포그래픽 오션스 이야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하면서도 앨범을 변호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냈다.[51] 1990년에는 앨범의 4분의 3에 만족하지만 나머지 4분의 1은 "제대로 융합되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촉박한 마감일 때문에 필요한 수정을 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크리스 스콰이어는 앨범을 밴드 역사에서 불행한 시기로 회상하며, 당시 존 앤더슨의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릭 웨이크먼은 대체로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하며, 2006년에 "《토포그래픽 오션스》에는 몇 가지 훌륭한 음악적 순간이 있지만, 예전 레코드의 형식 때문에 싱글 앨범에는 너무 많은 곡이 있었고, 더블 앨범에는 충분하지 않아서 곡을 늘렸는데 그 부분이 끔찍하다"고 혹평했다. 하지만 "Nous sommes du soleil"과 같은 아름다운 솔로를 칭찬하며 더 발전시킬 가치가 있었다고 평가했다.[52]
반면, 스티브 하우는 2023년에 이 앨범이 밴드에게 "날개를 펼치는 시간이었고, 그것을 하기 위해 지구 끝까지 간 훌륭한 프로젝트"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재앙이 닥칠 것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결국 해냈고, 예스의 역사를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토포그래픽 오션스》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여전히 앨범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고 만족하며, "《토포그래픽 오션스》는 완전히 서사적이며, 나는 그것을 아주 좋아한다"고 덧붙였다.[53]
5. 아트워크
앨범은 게이트폴드 슬리브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이는 ''Fragile'', ''Close to the Edge'', 그리고 ''Yessongs''의 아트워크를 디자인했던 로저 딘이 디자인하고 삽화를 그렸다.[29] 이들 각 앨범은 딘이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에서는 이어가지 않은 느슨한 서사적 흐름을 담고 있었다. 딘과 앤더슨은 런던에서 앵커리지를 경유하여 도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Close to the Edge 투어의 일본 공연을 위해 앨범 커버에 대한 아이디어를 논의했다. 비행 전에 딘은 존 미첼의 책 ''The View over Atlantis''의 삽화를 완성했다. 그는 아내들과 여자 친구들이 케이크를 만들었고, 런던에서 앵커리지까지는 완전히 취해있었지만, 앵커리지에서 도쿄까지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앤더슨에게 풍경의 패턴과 드래곤 라인에 대한 책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고, 그들은 몇 시간이고 멋진 풍경 위를 비행했다. 이러한 경험이 앨범 커버, 머천다이징, 무대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다.[25]
딘은 자신을 주로 풍경 화가로 묘사하며, 앨범 커버에 풍경에 대한 열정을 담고 싶어했고, 디자인에 묘사된 모든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26] 수채 물감과 잉크로 그려진 앞면에는 여러 별자리 아래 폭포를 도는 물고기들이 묘사되어 있다. 딘은 자신의 저서 ''Views''에서 앞면의 최종적인 랜드마크 집합이 의도했던 것보다 더 복잡해진 이유에 대해 "참여하고 싶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프로젝트의 특성에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30] 앤더슨은 마야 사원 치첸이트사를 원했고, 화이트는 나스카 평원의 표시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30] 풍경은 도미니 해밀턴의 엽서 모음에서 가져온 유명한 영국의 바위들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는 브림엄 록스, 랜드 엔드의 마지막 바위, 트린의 로건 록, 에이브버리와 스톤헨지의 단일 석재가 포함되었다. 딘은 "그 결과 다소 부조화스러운 혼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이다"라고 생각했다.[30]
초기 인쇄본에는 물고기 뒤 배경에 슬립스트림이 포함되었으나, 나중에는 제거되었다. 딘은 원래 디자인의 일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앤더슨의 설득으로 그림을 그린 후에 추가했는데, 딘은 투명 셀에 슬립스트림을 그리고, 슬립스트림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가지 버전으로 커버를 촬영했다. 딘은 그 아이디어가 여전히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고, 광고와 포스터에는 원래 디자인을 사용했다.[27] 2002년, ''롤링 스톤'' 잡지 독자들은 이 앨범의 커버를 역대 최고의 커버 아트 중 하나로 선정했다.[28] 커버 아트에는 멤버들의 생일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31][32]
5. 1. 커버 디자인
앨범은 게이트폴드 슬리브 형태로 제작되었으며, 이는 ''Fragile'', ''Close to the Edge'', 그리고 ''Yessongs''의 아트워크를 디자인했던 로저 딘이 디자인하고 삽화를 그렸다.[25] 이들 각 앨범은 딘이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에서는 이어가지 않은 느슨한 서사적 흐름을 담고 있었다. 딘과 앤더슨은 런던에서 앵커리지를 경유하여 도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Close to the Edge 투어의 일본 공연을 위해 앨범 커버에 대한 아이디어를 논의했다. 비행 전에 딘은 존 미첼의 책 ''The View over Atlantis''의 삽화를 완성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아내들과 여자 친구들이 케이크를 만들었고... 우리 모두 조금씩 먹었죠.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전혀 몰랐지만, 런던에서 앵커리지까지는 완전히 취해있었어요... 하지만 앵커리지에서 도쿄까지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죠. 앤더슨에게 풍경의 패턴과 드래곤 라인에 대한 이 책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고, 우리는 몇 시간이고 멋진 풍경 위를 비행했죠... 그래서... 일종의 마법 같은 풍경과 또 다른 풍경에 대한 아이디어가 앨범 커버, 머천다이징, 무대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미쳤어요."[25]딘은 자신을 주로 풍경 화가로 묘사하며, 앨범 커버에 풍경에 대한 열정을 담고 싶어했고, 디자인에 묘사된 모든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26] 수채 물감과 잉크로 그려진 앞면에는 여러 별자리 아래 폭포를 도는 물고기들이 묘사되어 있다. 딘은 자신의 저서 ''Views''에서 앞면의 최종적인 랜드마크 집합이 의도했던 것보다 더 복잡해진 이유에 대해 "참여하고 싶은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프로젝트의 특성에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앤더슨은 마야 사원 치첸이트사를 원했고, 크리스 화이트는 나스카 평원의 표시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풍경은 도미니 해밀턴의 엽서 모음에서 가져온 유명한 영국의 바위들로 구성되었으며, 여기에는 브림엄 록스, 랜드 엔드의 마지막 바위, 트린의 로건 록, 에이브버리와 스톤헨지의 단일 석재가 포함되었다. 딘은 "그 결과 다소 부조화스러운 혼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이다"라고 생각했다.
초기 인쇄본에는 물고기 뒤 배경에 슬립스트림이 포함되었으나, 나중에는 제거되었다. 딘은 원래 디자인의 일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앤더슨의 설득으로 그림을 그린 후에 추가했는데, 딘은 투명 셀에 슬립스트림을 그리고, 슬립스트림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가지 버전으로 커버를 촬영했다. 딘은 그 아이디어가 여전히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고, 광고와 포스터에는 원래 디자인을 사용했다.[27] 2002년, ''롤링 스톤'' 잡지 독자들은 이 앨범의 커버를 역대 최고의 커버 아트 중 하나로 선정했다.[28] 커버 아트에는 멤버들의 생일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79][80]
6. 투어 및 여파
== 투어 및 여파 ==
예스는 1973년 10월부터 미국 공연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완성할 시간을 더 갖기 위해 취소했다.[58] 앨범 발매 직후, 존 앤더슨은 리허설 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1974년 1월까지 앨범 발매와 투어를 연기하기를 원했지만, 영국 투어 개막 공연 티켓의 절반이 빠르게 매진되었고, 밴드는 취소할 수 없었다.[59] 예스는 런던의 레인보우 극장에서 5일 연속 매진을 기록했는데, 이는 록 밴드가 처음으로 달성한 기록이었다. 그들은 두 번의 추가 공연을 확보하려 했지만, 날짜가 비어 있지 않았다. 프로모터 하비 골드스미스는 영국 공연 티켓에 대한 엄청난 수요가 롤링 스톤스 투어에 버금간다고 말했다.[60] 초기 투어 리허설은 맨티코어에서 진행되었다.[62]
77회 공연으로 구성된 투어는 1973년 11월부터 1974년 4월까지 유럽과 북미를 방문했으며, 앙코르를 포함하여 ''Close to the Edge''와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전부 연주하는 2시간짜리 세트 리스트로 구성되었다. 밴드는 오프닝 밴드 없이 투어를 진행했다.[67] 투어가 진행되면서 세트 리스트가 변경되었다. 한 달 안에 레인, 테이트, 로드 크루는 "The Ancient"가 세트 리스트를 늦춘다고 생각하여 제외할 것을 권했지만, 밴드는 이 곡을 더 잘 연주하기 시작하여 유지했다.[59] "The Remembering"은 3월부터 완전히 제외되었다.[63] 북미 공연에는 뉴욕 시티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매진된 두 번의 공연이 포함되었으며, 2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2024년 기준 1,276,024달러에 해당). 밴드는 앨범의 삽화를 장식한 열기구를 5,000파운드에 구입하여 미국에서 공연하는 각 도시에 묶어 놓았다.[64]
예스는 이전 투어보다 4배나 많은 장비를 가져왔으며, 여기에는 딘과 그의 형제 마틴이 디자인한 정교한 세트가 포함되었다. 두 가지 버전의 무대가 제작되었는데, 미국 공연부터 사용된 두 번째 버전은 섬유유리 구조물, 드라이아이스 효과, 화이트를 둘러싼 드럼 플랫폼, 그리고 밴드가 등장하는 터널로 구성되었다. 한 쇼에서 화이트 주변의 열리고 닫히는 구조물이 작동하지 않아 그가 안에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이트와 릭 웨이크먼은 이 사건이 록 모큐멘터리 ''This Is Spinal Tap''에 묘사된 장면의 영감이 되었다고 주장했다.[64][65] 테이트는 투어를 위해 10,000파운드를 조명 장비에 지출했고,[66] 오퍼드는 24트랙 믹싱 데스크를 사용하여 밴드의 라이브 사운드를 믹싱했다.[67]
한편 레인보우 공연 이후 릭 웨이크먼은 밴드 회의를 소집하여 탈퇴 의사를 밝혔다. 밴드와 레인, 카슨은 투어 잔여 기간 동안 함께 해줄 것을 설득했다. 투어가 끝난 후 웨이크먼은 다음 앨범 리허설에 불참했고, 1974년 5월 18일 25세 생일에 탈퇴를 확정했다. 같은 날 그의 솔로 앨범 ''지구 중심 여행''이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다. 웨이크먼의 후임으로는 스위스 키보디스트 패트릭 모라즈가 영입되었다. 웨이크먼은 수록곡 길이와 내용의 난해함에 강하게 반발하며 앨범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77]
2016년 앨범 재발매 버전에서 1974년 4월 취리히에서 공연된 "Ritual"을 제외하고는 투어의 전체 녹음은 공식적으로 발매되지 않았다.[57] 예스는 1976년 북미 투어까지 "Ritual"을 계속 연주했으며, 그 이후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의 곡들은 20년 동안 연주되지 않다가, 앨범의 라인업이 재결합하여 ''Keys to Ascension'' 앨범을 발매하고 "The Revealing Science of God"를 연주했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The Revealing Science of God" 또는 "Ritual"이 라이브로 연주되었으며, 여기에는 2001년에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서 연주된 후자도 포함되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예스는 앨범 시리즈 투어의 일환으로 사이드 1과 4를 연주했다.
6. 1. 투어
예스는 1973년 10월부터 미국 공연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완성할 시간을 더 갖기 위해 취소되었다.[58] 앨범 발매 직후, 앤더슨은 리허설 시간을 더 확보하기 위해 1974년 1월까지 앨범 발매와 투어를 연기하기를 원했지만, 영국 투어 개막 공연 티켓의 절반이 빠르게 매진되었고, 밴드는 취소할 수 없었다.[59] 예스는 런던의 레인보우 극장에서 5일 연속 매진을 기록했는데, 이는 록 밴드가 처음으로 달성한 기록이었다. 그들은 두 번의 추가 공연을 확보하려 했지만, 날짜가 비어 있지 않았다. 프로모터 하비 골드스미스는 영국 공연 티켓에 대한 엄청난 수요가 롤링 스톤스 투어에 버금간다고 말했다.[60] 첫 레인보우 공연은 BBC에 의해 ''The Old Grey Whistle Test''에서 방송되고 라디오로 방송될 예정이었지만, 녹음은 진행되지 않았다.[61] 초기 투어 리허설은 맨티코어에서 진행되었다.[62]77회 공연으로 구성된 투어는 1973년 11월부터 1974년 4월까지 유럽과 북미를 방문했으며, 앙코르를 포함하여 ''Close to the Edge''와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를 전부 연주하는 2시간짜리 세트 리스트로 구성되었다. 밴드는 오프닝 밴드 없이 투어를 진행했다.[67] 투어가 진행되면서 세트 리스트가 변경되었다. 한 달 안에 레인, 테이트, 로드 크루는 "The Ancient"가 세트 리스트를 늦춘다고 생각하여 제외할 것을 권했지만, 밴드는 이 곡을 더 잘 연주하기 시작하여 유지했다.[59] "The Remembering"은 3월부터 완전히 제외되었다.[63] 북미 공연에는 뉴욕 시티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매진된 두 번의 공연이 포함되었으며, 2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밴드는 앨범의 삽화를 장식한 열기구를 5,000파운드에 구입하여 미국에서 공연하는 각 도시에 묶어 놓았다.
예스는 이전 투어보다 4배나 많은 장비를 가져왔으며, 여기에는 딘과 그의 형제 마틴이 디자인한 정교한 세트가 포함되었다. 두 가지 버전의 무대가 제작되었는데, 미국 공연부터 사용된 두 번째 버전은 섬유 유리 구조물, 드라이아이스 효과, 화이트를 둘러싼 드럼 플랫폼, 그리고 밴드가 등장하는 터널로 구성되었다. 한 쇼에서 화이트 주변의 열리고 닫히는 구조물이 작동하지 않아 그가 안에 갇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이트와 릭 웨이크먼은 이 사건이 록 모큐멘터리 ''This Is Spinal Tap''에 묘사된 장면의 영감이 되었다고 주장했다.[64][65] 테이트는 투어를 위해 10,000파운드를 조명 장비에 지출했고,[66] 오퍼드는 24트랙 믹싱 데스크를 사용하여 밴드의 라이브 사운드를 믹싱했다.[67]
2016년 앨범 재발매 버전에서 1974년 4월 취리히에서 공연된 "Ritual"을 제외하고는 투어의 전체 녹음은 공식적으로 발매되지 않았다.[57] 예스는 1976년 북미 투어까지 "Ritual"을 계속 연주했으며, 그 이후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의 곡들은 20년 동안 연주되지 않다가, 앨범의 라인업이 재결합하여 ''Keys to Ascension'' 앨범을 발매하고 "The Revealing Science of God"를 연주했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The Revealing Science of God" 또는 "Ritual"이 라이브로 연주되었으며, 여기에는 2001년에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서 연주된 후자도 포함되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예스는 앨범 시리즈 투어의 일환으로 사이드 1과 4를 연주했다.
6. 2. 웨이크먼의 탈퇴
레인보우 공연 이후 릭 웨이크먼은 밴드 회의를 소집하여 탈퇴 의사를 밝혔다. 밴드와 레인, 카슨은 투어 잔여 기간 동안 함께 해줄 것을 설득했다. 웨이크먼은 앨범 전체를 연주해야 하는 것에 불만을 느꼈고, 영국 투어 리허설 시간이 부족한 점이 맨체스터 공연에서 극에 달했다. 당시 그의 기술자는 무대에서 먹을 카레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로디 빌 터너는 웨이크먼이 지루해하자 손 인형을 흔들어 관객에게 인사하거나 태엽 장난감 공룡을 무대 위로 뛰어다니게 했다고 회상했다. 존 앤더슨은 세트의 키보드 솔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웨이크먼을 너무 몰아붙였다고 느꼈고, 계속해서 제대로 연주하라고 요구했다. 웨이크먼은 미국 공연이 진행되면서 상황이 나아졌다고 말했다.투어가 끝난 후 웨이크먼은 다음 앨범 리허설에 불참했고, 1974년 5월 18일 25세 생일에 탈퇴를 확정했다. 같은 날 그의 솔로 앨범 ''지구 중심 여행''이 영국 차트 1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했다. 웨이크먼의 후임으로는 스위스 키보디스트 패트릭 모라즈가 영입되었다.
웨이크먼은 수록곡 길이와 내용의 난해함에 강하게 반발했다.[77] 그는 앨범 제작에 끝까지 참여하지 못했고, "의식" 마지막 부분의 피아노 연주는 패트릭 모라즈가 맡았다.[78] 웨이크먼은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 투어 후인 1974년 중반에 예스를 탈퇴하면서 여러 인터뷰에서 앨범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7. 곡 목록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 앨범에 수록된 곡 목록은 다음과 같다. 모든 곡은 존 앤더슨, 스티브 하우, 크리스 스콰이어, 릭 웨이크먼, 앨런 화이트가 작사 및 작곡했다.
1994년 재발매된 CD 버전은 2개의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디스크에는 다음 곡들이 수록되었다.
디스크 1# 신의 계시 과학 (새벽의 춤) – 20:27
# 기억 (기억의 높이) – 20:38
디스크 2# 고대인 (태양 아래 거인들) – 18:34
# 의식 (Nous Sommes du Soleil) – 21:35
LP 음반의 각 면에 수록된 곡은 다음과 같다.
사이드 원# 신의 계시 과학 (새벽의 춤) - 20:23 (작사: 존 앤더슨, 스티브 하우)
사이드 투# 기억 (기억의 높이) - 20:33 (작사: 앤더슨, 하우, 크리스 스콰이어, 릭 웨이크먼, 앨런 화이트)
사이드 쓰리# 고대인 (태양 아래 거인들) - 18:32 (작사: 앤더슨, 하우, 스콰이어)
사이드 포# 의식 (Nous Sommes du Soleil) - 21:31 (작사: 앤더슨, 하우)
2003년 리마스터 버전에는 음질 향상과 함께 2곡의 보너스 트랙이 추가되었다.
# 새벽의 춤 (스튜디오 런-쓰루) - 23:35 (작사: 존 앤더슨, 스티브 하우)
# 태양 아래 거인들 (스튜디오 런-쓰루) - 17:17 (작사: 존 앤더슨, 스티브 하우, 크리스 스콰이어)
7. 1. 오리지널 발매
오리지널 LP는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A면(디스크 1)
# 신의 계시 - "The Revealing Science of God (Dance of the Dawn)" (20분 27초)
;B면(디스크 1)
# 추억 - "The Remembering (High the Memory)" (20분 38초)
;C면(디스크 2)
# 고대 문명 - "The Ancient (Giants under the Sun)" (18분 34초)
;D면(디스크 2)
# 의식 - "Ritual (Nous sommes du soleil)" (21분 35초)
7. 2. 1994년 재발매
1994년 재발매된 CD 버전은 두 개의 디스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디스크는 다음과 같은 곡들을 담고 있다.디스크 1# 신의 계시 과학 (새벽의 춤) – 20:27
# 기억 (기억의 높이) – 20:38
디스크 2# 고대인 (태양 아래 거인들) – 18:34
# 의식 (Nous Sommes du Soleil) – 21:35
음반의 각 면은 다음과 같다.
사이드 원# 신의 계시 과학 (새벽의 춤) - 20:23 (작사: 존 앤더슨, 스티브 하우)
사이드 투# 기억 (기억의 높이) - 20:33 (작사: 앤더슨, 하우, 크리스 스콰이어, 릭 웨이크먼, 앨런 화이트)
사이드 쓰리# 고대인 (태양 아래 거인들) - 18:32 (작사: 앤더슨, 하우, 스콰이어)
사이드 포# 의식 (Nous Sommes du Soleil) - 21:31 (작사: 앤더슨, 하우)
2003년 리마스터 버전 (디스크 2)에는 보너스 트랙으로 다음 곡들이 추가되었다.
# 새벽의 춤 (스튜디오 런-쓰루) - 23:35 (작사: 앤더슨, 하우)
# 태양 아래 거인들 (스튜디오 런-쓰루) - 17:17 (작사: 앤더슨, 하우, 스콰이어)
7. 3. 보너스 트랙 (2003 리마스터)
2003년 CD 리마스터반에는 음질 향상과 함께 다음과 같은 2곡의 보너스 트랙이 추가되었다.1. 새벽의 춤 (스튜디오 런-쓰루) (작사: 존 앤더슨, 스티브 하우, 23:35)
2. 태양 아래 거인들 (스튜디오 런-쓰루) (작사: 존 앤더슨, 스티브 하우, 크리스 스콰이어, 17:17)
8. 참여 인원
존 앤더슨은 리드 보컬과 퍼커션을 담당했으며, 스티브 하우는 기타, 전기 시타르, 류트, 백 보컬을 맡았다. 크리스 스쿼이어는 베이스 기타와 백 보컬을, 릭 웨이크먼은 키보드를 연주했다. 앨런 화이트는 드럼과 퍼커션을 담당했다.
앨범의 프로듀서는 예스와 에디 오포드이며, 가이 비드미드가 테이프를 담당했다. 로저 딘은 커버 디자인 및 일러스트를, 맨셀 리소는 플레이트를 담당했다.
8. 1. 밴드 멤버
존 앤더슨 – 리드 보컬, 퍼커션스티브 하우 – 기타, 전기 시타르, 류트, 백 보컬
크리스 스쿼이어 – 베이스 기타, 백 보컬
릭 웨이크먼 – 키보드
앨런 화이트 – 드럼, 퍼커션
8. 2. 기술
- 예스 – 프로듀서
- 에디 오포드 – 프로듀서
- 가이 비드미드 – 테이프
- 로저 딘 – 커버 디자인 및 일러스트
- 맨셀 리소 – 플레이트
9. 차트 성적
《Tales from Topographic Oceans》은 발매 후 여러 국가의 차트에 진입했다. 1973년에서 1974년 사이의 차트 기록은 다음과 같다. 호주 앨범 차트에서 13위[69], 캐나다 4위, 네덜란드 8위, 핀란드 앨범 차트에서 27위[70], 독일 26위, 이탈리아 앨범 차트에서 16위[71], 일본 Oricon 앨범 차트에서 8위[72], 노르웨이 8위, 영국 1위, Billboard 200 6위를 기록했다.
2016년에는 스코틀랜드 60위, 영국 인디펜던트 18위, 영국 록 6위를 기록했다.